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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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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축조

  • 덮개돌 채석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덮개돌은 산 인근에서 자연적으로 분리된 석재를 다듬어서 사용하거나 암벽에서 덮개돌을 때어내는 작업으로 구해야 한다. 이때는 암벽의 절리를 이용하거나 알맞은 크기의 구멍을 내어 쐐기나 지렛대를 이용해 분리하여야 한다. 암반에서의 채석은 20cm 내외의 채석구멍을 파고 팽윤율(부풀어 오르는 성질)이 높은 마른나무(참나무 등)에 물을 부으면 나무쐐기가 부풀어 오르는 팽창력을 이용하였다.
  • 덮개돌 채석장
  • 덮개돌 채석장
  • 덮개돌 운반 : 덮개돌을 옮기는 데는 크기와 형태에 따라 여러 방법을 사용하였다.
    • 목도식: 무게가 가벼운 판석을 2사람이나 4사람이 어깨에 끈을 메고 이동시키는 방법
    • 끌기식: 무게가 무겁고 거리가 먼 경우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끌어가는 방법
    • 지렛대식: 가까운 거리나 가벼운 덮개돌의 경우 지렛대의 힘으로 옮기는 방법
  • 끌기방법
    • 나무끌개의 제작과 덮개돌 적재
      거석을 운반할 때 나무끌개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선사시대 이집트 부조상이나 민족지 자료 등 여러 형태를 통해 알 수 있으며 두 개의 통나무를 조립해 만든 Y자형이나 V자 형태로 크기는 5~7m이다. 적재를 위한 밧줄은 식물의 줄기를 엮어서 사용했을 것이며 밧줄의 연결은 운반시 힘의 분산을 막고 균형을 잡으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4줄~6줄의 밧줄이 연결된다.
  • 덮개돌 끌기
  • 덮개돌 이동
    덮개돌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바닥에 통나무 굴림목을 놓고 그 위에 나무끌개를 올리고 나무끌개 위에 통나무를 걸친 후에 덮개돌을 올리고 통나무나 밧줄로 결박한 모습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 덮개돌 이동
  • 무덤방 축조
    • 무덤방 만들기
      먼저 묘광(무덤움)을 파고 그 안에 주검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만들었는데 주로 판돌이나 깬돌을 이용해 네모꼴로 세우거나 쌓아 만들었다. 무덤방을 만들 때 간돌검이나 붉은간토기를 장송용으로 넣어주기도 하며, 주검 곁에는 무기류나 장신구류, 공헌토기를 부장하기도 한다.
  • 무덤방 만들기
  • 무덤방에 유물부장
  • 받침돌과 묘역 설치하기
    무덤방이 만들어지면 주위에 받침돌을 세우고 납작한 돌을 깔아 묘역을 구획합니다. 그 다음 덮개돌을 끌어올리기 쉽도록 흙으로 경사지게 쌓아 올립니다.
  • 덮개돌 올리기
    고인돌 축조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받침돌 위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정확하게 올리는데 고도의 토목건축학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운반되어 온 덮개돌은 통나무 활주로를 이용하는 방법, 바로 끌어 올리는 방법, 가구된 통나무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고 무덤방을 조립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었다.
  • 인도네시아 Sumba섬의 고인돌 덮개돌 올리기
  • 고인돌 축조과정

의식주 해결

  • 배산임수의 마을
    고인돌시대 사람들은 땅을 파고 집을 짓는 움집(竪穴住居)이 보편적인 형태로 대개 열 집 안팎의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그 주위로는 마을의 경계와 방어를 위한 도랑을 파거나 나무 울타리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고인돌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곳은 낮은 언덕이나 강가에 마을을 이루고 살다가, 농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점차로 낮은 언덕의 편평한 곳에 대규모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2~4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으나, 갈수록 낮은 구릉이나 강변의 충적지대로 옮겨가면서 그 규모가 확대되어 많게는 수백여 채의 집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규모 마을로 변모해 갔습니다.
  • 배산임수의마을
    (울산 검단리 마을)
  • 농사로 안정된 식생활
    고인돌사람들은 안정된 식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농경을 실시하였으나 여전히 부족한 식재료는 수렵과 어로, 채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석기시대 이후로 밭농사가 중심이었으나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고랑과 이랑이라는 신발명품을 만들어 조, 기장, 수수와 콩 등의 작물을 재배하기도 하고 지형적인 조건을 그대로 이용한 논농사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밭농사로 얻어진 수확물은 쌀, 밀, 보리, 기장, 조, 콩, 들깨 등이 있으며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밭 유적은 대구 동천동, 동호동, 진주 대평리, 진안 여의곡 유적에서 조사되었다.
  • 논농사로 안정된 식생활
    논산 마전리 논유적 복원모습(호서지역 청동문화 2007)
  • 신분에 따른 복장
    고인돌시대 사람들은 유적에서 출토된 가락바퀴, 뼈로 만든 바늘, 실 등으로 볼 때 가락바퀴로 실을 꼬고, 바늘로 무엇인가를 꿰매서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 그러나 직물보다는 구하기 쉬운 동물 가죽 등을 옷으로 재단한 다음 실로 꿰매 입는 의복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 가락바퀴 사용모습
  • 가락바퀴

도구사용

  • 다양한 돌도구 사용
    선사시대 사람들은 돌로 만든 도구를 이용하여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돌로 만든 도구의 종류도 많아지고 대량으로 만들어지며, 제작기술도 크게 발달한다. 농기구인 돌칼, 돌낫, 돌괭이와 목공구류인 돌도끼, 돌끌, 돌대패 등과 무기류인 돌검과 돌화살촉 등이 돌로 만들어졌다.
  • 농사에 필요한 농경구-돌칼,돌낫,갈돌과갈판
  • 돌칼과 돌낫 복원 모습
  • 돌칼로 고기 자르기(선사체험)
  • 돌검과 돌화살촉
  • 맞춤형 토기 제작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제작한 토기는 굵은 모래나 곱돌가루를 섞은 진흙으로 빚어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구운 납작토기로 민무늬토기라 한다. 적갈색이나 황갈색을 띠며 그릇의 기면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어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토기, 운반하기 위한 토기, 음식물을 조리하기 위한 토기 등으로 맞춤형 토기제작이 이루어졌다.
  • 저장용 그릇
  • 조리용 그릇
  • 토기 제작 모습(선사체험)
  • 거푸집을 이용한 청동기제작
    인류 최초의 금속기인 청동기는 재료의 희귀성으로 인해 일반 주민의 실용품이라기 보다는 유력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특수품 또는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사용되었다.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청동창, 청동화살촉 등의 무기류와 청동도끼, 청동손칼, 끌 등의 공구류, 청동거울, 청동방울, 농경문청동기 등의 의기류 등이 있다. 이러한 청동기는 거푸집을 이용하여 채광⇒정련⇒주조⇒마연의 공정을 거쳐 완성하게 된다.
  • 거푸집 제작
  • 거푸집을 이용한 청동기제작 거푸집에주물부음
  • 청동검 복원

고인돌 사회

거대한 고인돌을 채석하고 운반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원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활의 바탕에는 토착농경과 정착생활이 기본이며, 고인돌의 축조하기 위해 정치적인 힘과 경제적인 부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 문화적 배경과 원시 신앙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는 협동정신이 투철하고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회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 지배자의 무덤(고창 운곡리)
  • 여수 화동리
  • 공동체의 힘

고인돌 연대

  • 1,000년 동안 만들어진 선사시대 산물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의 연대와 형식간의 선후에서 추정하거나 자연과학적인 연대측정 자료를 응용해 시기를 파악하는 추세이다. 고인돌에서 측정된 절대연대를 보면 기원전 11세기에서 9세기에 속한 자료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소멸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전반에 해당하는 유물의 출토로 기원전 3~2세기설이 대체로 수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인돌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1,000년 동안 만들어진 청동기시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 고인돌이 사라진 이유
    고인돌은 왜 소멸되었을까?. 고인돌의 소멸은 당시 사회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고인돌 후기의 사회는 지배계층의 등장과 외부로부터 선진문화의 수용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지배계층인 수장층의 등장은 기존의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한 지배 집단간의 이합집산에 의해 급격한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다음은 선진문화인 철기문화의 수용이다. 고인돌이 축조되는 시기의 청동기는 무기류가 주를 이루고 있고, 과장되거나 커져서 의기화 되는 반면에 철기는 무기보다는 농경구 등 실생활용구들을 많이 제작하게 된다. 이 철제 농경구는 석기로 하던 작업 양보다는 3~4배 가량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도구이다. 필연적으로 고인돌 축조에 동원된 인력은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많은 인원이 필요 없는 나무널무덤이나 움무덤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